작년에 제출된 자기소개서의 64.4%가 생성형 AI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. 전 문항을 AI로 채운 비율도 20.6%. 지금 자소서를 쓰는 사람 셋 중 둘은 옆에 AI 창을 하나 열어두고 있는 셈이에요.
기업도 같은 걸 알고 있어요. 국내 기업 52.4%가 채용에 AI를 쓰고 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고, 금융권을 중심으로는 서류평가 솔루션이 AI 작성 여부까지 같이 봅니다.
그래서 요즘 검색창에 이런 게 올라와요. "AI로 쓴 거 티 나나요."
탐지기는 확률만 뱉어요
먼저 정리할 게 있어요. AI 탐지기는 "이 글은 AI가 썼습니다" 라고 말하지 않아요. 82% 같은 숫자 하나를 뱉을 뿐이에요.
그리고 그 숫자만으로 사람을 떨어뜨리는 회사는 거의 없어요. 사람이 직접 쓴 글에도 높은 점수가 나오는 일이 흔하고, 그걸 근거로 탈락시켰다가 항의를 받으면 설명할 방법이 없거든요.
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좀 달라요. 탐지 점수는 "이 서류를 눈여겨보라" 는 표시로 쓰이고, 떨어뜨리는 판단은 그다음에 사람이 해요. 그 사람이 보는 건 AI를 썼는지가 아니라 이 지원자가 실제로 뭘 했는지가 읽히느냐예요.
여기가 핵심이에요. 걸러지는 건 AI를 쓴 사람이 아니라 자기 경험이 안 보이는 사람이에요. AI 없이 혼자 써도 저렇게 쓰면 똑같이 걸러지고, AI로 다듬었어도 자기 것이 들어 있으면 안 걸러져요.
AI 문장이 남기는 자국
"경험이 안 보이는 문장" 이 뭔지 구체적으로 보면, 대체로 이 중 몇 개가 겹쳐 있어요.
숫자가 없어요. 몇 명, 몇 주, 몇 퍼센트가 한 번도 안 나와요.
고유명사가 없어요. 팀 이름, 쓰던 도구, 만든 기능, 부딪힌 부서. 검색으로는 알 수 없고 거기 있던 사람만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요.
실패가 없어요.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담이에요. 3년을 일했으면 실패가 섞이기 마련인데, AI는 시키지 않으면 그걸 안 씁니다.
문단 길이가 자로 잰 듯 같아요. 한 문단이 세 줄, 다음 문단도 세 줄, 그다음도 세 줄. 사람이 쓰면 한 줄짜리 문단이 중간에 섞여요.
단어가 뭉쳐 다녀요. 역량, 니즈, 제고, 함양, 귀사, 이해관계자. 하나쯤은 쓸 수 있어요. 한 문단에 셋이 들어 있으면 그건 고른 게 아니라 딸려 온 거예요.
고쳐 쓴 문장 열 쌍
1. 협업
- 앞: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협업 능력을 키웠습니다.
- 뒤: 6명 팀에서 결제 화면 두 개를 맡았고, 디자이너와 매주 화요일에 화면을 같이 봤습니다.
2. 개선
- 앞: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여 서비스를 개선했습니다.
- 뒤: 이탈이 가장 많던 결제 3단계를 1단계로 합쳤습니다. 이탈률이 41%에서 28%로 내려갔습니다.
3. 학습
- 앞: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.
- 뒤: 회사가 Vue에서 React로 옮길 때 마이그레이션 문서를 제가 썼고, 팀원 4명이 그 문서를 보고 각자 맡은 화면을 옮겼습니다.
4. 책임
- 앞: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바 업무를 완수했습니다.
- 뒤: 배포 다음 날 새벽에 결제가 막혔을 때 롤백을 제가 결정했습니다. 매출 집계가 하루 밀리는 것을 감수한 선택이었습니다.
5. 소통
- 앞: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합니다.
- 뒤: 기획자가 요청한 기능을 두 번 되물어 범위를 줄였습니다. 3주 걸릴 일이 1주로 끝났습니다.
6. 자기계발
- 앞: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.
- 뒤: 작년에 SQLD를 땄습니다. 그전까지 개발자에게 부탁하던 지표 추출을 그때부터 직접 했습니다.
7. 문제 해결
- 앞: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.
- 뒤: 원인을 못 찾아 사흘을 썼습니다. 우리 코드가 아니라 결제사 응답 형식이 바뀐 것이었고, 그 뒤로는 외부 응답을 먼저 의심합니다.
8. 지원 동기
- 앞: 귀사의 비전에 깊이 공감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.
- 뒤: 작년 개편에서 검색 필터를 늘리지 않고 없앤 결정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. 저는 필터를 늘리다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.
9. 데이터
- 앞: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통해 성과를 창출했습니다.
- 뒤: A/B 테스트를 돌렸고 제가 밀던 안이 졌습니다. 그대로 접었습니다.
10. 조율
- 앞: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조율을 통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.
- 뒤: 영업팀은 이번 분기, 개발팀은 다음 분기를 원했습니다. 기능을 반으로 잘라 이번 분기에 절반을 냈습니다.
뒤쪽 문장들의 공통점은 화려함이 아니에요. 화요일, 41%에서 28%, 사흘, 팀원 4명. 전부 거기 있던 사람만 아는 것들이에요. AI가 못 쓰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에요 — 모르니까요.
그래서 순서를 바꿔요
AI에게 초안을 시키고 내가 다듬는 순서로 쓰면, 뻔한 뼈대가 먼저 서고 거기에 내 얘기를 끼워 넣게 돼요. 뼈대가 뻔하니 아무리 다듬어도 뻔한 채로 남아요.
반대로 하면 돼요. 재료를 내가 먼저 적고, AI에게는 문장만 다듬게 하는 거예요.
재료는 네 줄이면 충분해요.
- 무슨 일이 있었나
- 내가 뭘 정했나
- 결과가 숫자로 어떻게 됐나
- 그때 내가 뭘 잘못 알고 있었나
마지막 줄이 제일 중요한데 제일 잘 빠져요. 실패를 적어두면 그게 문장에 결을 만들어 줘요.
이 얘기가 안 맞는 경우
세 가지는 예외예요.
공공기관이나 블라인드 채용의 정형 문항. 항목이 정해져 있고 평가표가 그 항목을 따라가요. 여기서는 개성보다 빠짐없이 채우는 게 먼저예요.
경력 재료가 아직 적을 때. 숫자가 없는데 숫자를 지어내면 면접에서 무너져요. 규모가 작으면 작은 대로 정확하게 쓰는 게 나아요. "동아리 6명" 도 숫자예요.
서류 1차를 ATS 키워드로만 거르는 회사. 사람이 읽기 전에 잘리면 문장 결이 소용없어요. 공고에 있는 단어를 그대로 넣는 게 먼저고, 다듬는 건 그다음이에요.
남는 것
AI를 쓸지 말지는 이제 질문이 아니에요. 셋 중 둘이 쓰고 있고, 안 쓰면 시간에서 손해를 봐요.
질문은 AI가 채워줄 수 없는 재료를 내가 가지고 있느냐예요. 그 재료는 자소서를 쓰는 날 만들어지지 않아요. 그 일이 있었던 주에 적어둔 사람만 가지고 있어요.
회사마다 어떤 이력서를 냈고 면접에서 뭘 물었는지 카드에 붙여두면, 다음 서류를 쓸 때 재료를 기억에서 꺼내지 않아도 돼요.